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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타리/경제의 다양한 이야기

자본의 힘 5 안전자산, 집

by thanks tree 202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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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국가에선 재산 소유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개인 재산을 소유해 정치 경제적 삶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민주주의 이론이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부동산을 소유하자 금융권제도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주택 구입자금 용도로 무려 수조 달러가 시중에 풀렸다. 여기에는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받았던 서브 프라임 대출이 포함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

 

 다른 자산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자산도 얼마든지 오르락내리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젠 집이 가장 안전하다는 속담이 불변에 진리가 아니다. 과거에는 상류계급만이 부동산을 소유했다 상류계층은 토지 권리층과 정치적 특권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부동산이 없는 사람들은 영주에게 소작료를 내야 했고 선거에서 투표조차 할 수 없었다.

 

 오늘날의 영국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 토지의 2/3를 19만 가구가 독점하고 있고 다른 게 있다면 정치권력이 분산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귀족의 몰락에 주목할 만한 것은 금융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830년대 주로 대지주 귀족이 큰돈을 벌었다. 그런데 농업의 발달로 수확량이 크게 증가하였는데도 귀족들이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안타갑께도 그들은 부동산의 속성을 몰랐다. 귀족들은 토지를 수입원으로 보았다. 토지의 가치를 맹신하고선 무리하게 돈을 벌렸다. 토지란 담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1940년 중반부의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왜냐하면 곡물 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면서 농경지에서 나오는 수입이 감소 교외의 땅값도 곤두박질쳤다. 땅값이 폭락하자 토지를 담보로 빌린 돈을 갚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토지의 자산 가치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주택보급을 통한 재산 민주주의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그것도 금융사의 최대 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나라마다 집에 대한 표현은 달라도'내 집 만한 곳은 없다' 리고 말한다. 요즈음 누구나 집을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1920년만  하더라도 미국 자가소유 비율은 20%에 불과했다.

 

 1029년 대공황 시절 이후 벌어진 사건 이후 미국에 주택 정책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막대한 자산을 보유한 포드사와 해고 근로자 집단 양측에 깊은 갈등은 투쟁이 아닌 상호 협력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벽화(디트로이트 산업, 디에고 리베라 작품)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림보다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로 했다.

 

 미국의 뉴딜 정책에 주택정책도 포함되었다 이때 재산소유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또한 새로 설립된 연방 주택청에서 장기간 낮은 이자로 주택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모기지 대출이 20년, 30년으로 늘어난 것도 이 시기였다. 또한 주택 모기지 대출 시장을 미국 전역에 확대하고자 연방 저장조합인 패니메이 창설했다 매월 갚아야 할 이자가 줄자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장만하게 됐다 

 

 백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만 대출이 허용되었다. 주민 대부분이 흑인 사는 곳에서는 신용불량 이유로 대출 승인해 주지 않았다. 주택 정책으로 도시가 양분된 것이다. 겉으론 신용등급을 내세웠지만 이는 인종차별에 해당한다. 이는 신용등급으로 구역을 나누는 관행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에는 이런 관행을 프라임(신용도가 높은 우량등급)과 서브 프라임(신용도가 낮은 비우량등급) 형태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미국은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을 경험하게 된다. 영국의 대처수상은 이 교훈을 신속히 실행에 옮겼다 영국 국민들에게  공용 주택을 특별할인가에 분양해 줌으로써 내 집 장만에 길을 열어 주었다.  이는 영국인들이 그만큼 담보 대출을 많이 받았다는 뜻이다.

 

 1960년 ~70년대는 비교적 금리가 낮았고 물가가 상승하는 추세여서 주택담보 대출에 실질적 상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선 물가 안정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결국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주택 정책의 결과로 80년대 후반 이 두나라는 유례없는 호황과 불황을 맞이했다.

 

 저축 대부 조합은 구조 조정전문기관으로 금융기관의 부실 자산, 채권을 취급한다 뉴딜 정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인플레이션률 상승과 높은 금리였다. 이로 인해 예금이자가 지불해야 하는데 주택자금에서 회수되는 돈은 고정되어 있어 결국 경영난에 직면하게 된다.

 

이 시기 정부는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한다. 규제완화로 저축 대부조합은 다양한 대출 상품을 개발했다 금리를 인상해서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은 뒤 그 돈으로 대출을 해주었다. 어디서든 사기꾼들이 문제다 대출업자와 부동산업자가 작당해서 허허벌판에서 큰돈을 벌어들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주택 대부조합과 부동산업자들이 주택을 과잉 공급과  외곽도로변의 주택 수요가 극히 저조해서 투자가치가 없었다. 이로 인해 주택 대부 조합 500곳이 줄줄이 파산했다. 이로 인한 피해액은 1530억 달러이다.

 

 2002년 10월 조지부시 대통령은 5년 안에 소수민족 550만 가구에게 내 집마련에 꿈을 이루어 주겠다고 선언했다. 연방정부가 대출 규제를 완화하자 모기지 회사들은 대출상품을 개발해서 고객확보에 나섰다 이로 서브 프라임도 대출을 받을 수 있데 된다. 

 

소위 닌자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은행등 금융기관에서 소득에 상관없이 받을 수 있는 대출이다 이는 금리 상승에 취약한 가계구조를 양산했다. 그렇다면 금리가 오를 경우 서브 프라임 대출자가 파산할 가능성을 은행들이 고려하지 못한 걸일까  물론 은행들도 위험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서브프라임의 주요 원인이 됐다. 바로 증권화이다.

 

 모기지 회사는 주택 담보로 내준 서브 프라임 대출을 은행에 되판다 은행들은 사들인 대출을 증권화한다 그리고 다양한 대출을 한데 묶음 다음에 다시 여러 종류로 나누어 그중 최상급을 트리플 A로 투자적격증권으로 인증한다. 그런 다음에 이 증권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팔아서 수익을 남긴다. 투자자의 내는 돈은 앞으로 낼 이자에 비해서 매우 적다.

 

 증권화가 왜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모기지 대출이 이루어지는 곳과 해외 투자자가 사는 곳의 거리를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받은 대출을 노르웨이 작은 마을에 사는 투자자는 알 길이 없다.  실업률과 금리가 폭등하는 2006년 한 해 동안에 금융기관은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패니메이 와 프레디 맥은 미국 모기지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성장했으나 2008년 9월에 국유화되었다. 이번 금융위기는 과거와 달리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노르웨이 도시 나나 등 여러 도시에서 시민들이 낸 세금을 서브프라임 증권에 투자했다가 그 결과 투자 원금에 85%를 잃었다.

 

 영미권에서 부동산에대한 신뢰가 강했다. 그래서 다른 투자처들 보다도 낮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부동산만 믿었다간 손해를 보기 쉽다. 1985년 기점으로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30배로 뛰자 은행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실상은 거품에 가까웠다. 

 

 1990년 마침내 부동산 거품이 터졌다. 도쿄의 부동산 가격 하락률은 무려 75%였다. 부동산은 비유동적인 자산이다 필요할 때 현금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영미권에서 주장한 재산 소유 민주주의 한계이다. 그렇다면 개발도상국에서의 재산 소유 민주주의는 어땠을까  부동산을 포함해 모든 자산시장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경기 침체가 일상이 된 아르헨티나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에르난도 데 소토는 개발도상국에 빈민가에는 수조 달러의 부가 잠재되어 있지만 그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킬메스 지역 이곳 빈민 거주지역에서 데소토의 이론을 검증해보고자 한다.

 

 1980년대 초부터 이 곳 주민들은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살았다. 몇 년 후 정부에게 소유권을 요구했다. 결국 정부는 월세를 꾸준히 내는 기구에 임차권을 주고 그리고 20년 후에 소유권으로 전환해 주기로 약속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부동산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데소토의 이론은 헛점이 있다. 금융기관에서 주택담보로 소유권을 인정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4%만이 모기지 대출을 받았다. 가장 확실한 담보는 소득이다. 부동산이 없어도 부를 창출하는 볼리비아 한 여성은 소액금융으로 대출을 받아 커피 장사를 하여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대출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듯 부동산 투자만 맹신해서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