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전 세계 국민 총생산 47조 달러, 같은 해 두 배에 달하는 119조 달러의 시장은 있었다 주식 채권 시장이다 그럼 금융 파생상품의 규모는 473조 달러를 기록했다 2007년 하반기부터 지구촌 금융네트워크가 운송망과 통신망 연결 차원을 넘어서 국제 투자은행과 24시간 외환 은행실이 금융네트워크를 주도한다.
그렇다면 금융은 어떻게 확산됐고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즉 금융의 세계화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홍콩이 거대 무역항으로 성장한 것이 그 예이다. 하지만 세계화에 동반되는 취약성도 있다. 금융은 정교한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충격에 취약한 할 수밖에 없고 금융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정치적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돈의 역사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세계 경제의 판도가 바뀐 데에는 이유가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자금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공생하는 관계를 일 겉어 차이메리카라고 한다. 한때 사람들은 이머징 마켓(급성장하는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흥시장) 위험부담이 큰 시장으로 인식했다. 해외 투자로 큰 수익을 낼 수도 있지만 현재 시장이 악화되면 큰 손실을 볼 수 도 있다.
최근에는 위기를 딛고 다시 떠오르는다는 의미로 리이머징마켓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중국이다. 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되었다고 하지만 해외 투자는 여전히 어렵다. 다른 나라 정부 기업의 정책까지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외국에서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1914년 이전에는 자국 정부 파병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영국의 투자자들은 세계 어디서든 마음 놓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다. 영국은 총포를 동원해서 세계화 시장의 첫 장을 열였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 인물로는 제임스 메디슨과 윌리엄 자딘이다 1832년 중국남부 광저우 항에 무역회사를 설립해서 돈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주된 수입원은 마약 밀매였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아편을 수입해서 중국인들에게 판매했다 그러나 중국정부의 아편 판매 금지조치에 따른 손실로 자딘은 영국에 가서 파병을 요청했다. 1840년 8월 영국의 해군이 홍콩에 도착 이후 아편 전쟁을 치르게 된다 영국의 승리로 중국의 남부 지역이 영국에 넘어갔고 그 와 동시에 아편시장이 개방됐고 중독자 급증했다.
1900년경 자딘 메디슨 사는 사업을 다각화했다. 양조장, 면직공장, 보험회사를 설립했고 철도 공사에도 관여했다. 이처럼 세계경제의 주축이 무역에서 금융으로 이동하면서 금융 세계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다.
투자자들은 왜 증권거래소가 폐장될 거라는 것을 전쟁직전까지 몰랐을까 당시 세계가 금융통합과 혁신을 이루어 안정을 이루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세대를 거쳐 이루어낸 체제라도 단 며칠 만에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44년 승전을 앞둔 연합국들은 세계금융 새로운 질서 세우기로 했다. 무역은 자유화하되 자본이동은 엄격히 규제하기로 했다. 새로운 금융질서 확립과 함께 위싱턴 D.C 에 국제기구 두 곳이 탄생했다. 하나는 IMF 다른 하나는 훗날 세계은행으로 불리게 될 국제부흥개발은행이다.
한편 1970년대부터 중동 산유국들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이 돈은 서구은행이 유치해서 대출로 재투자하자 국제기구들은 규제를 완화했다. 이로써 금융의 세계화가 다시 열렸다. 그 후 남미 지역에서는 차입금이 4배로 증가했다. 무려 3115억 달러를 빌렸다. 1982년이 되자 멕시코 정부는 대외 채무를 갚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얼마 후 남미 대륙 전체가 파산의 위기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젠 IMF와 세계은행이 이런 문제를 맡게 되었다. 대출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받아들여 긴축재정을 강화하라고 이들 국가들을 압박한다. 이는 금융세계화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경제 저격수라는 금융모델이 등장하게 된다. 치명적인 함정은 지닌 금융상품 바로 헤지펀드다 헤지 펀드는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돈을 회수할 수 있다는데 더욱 위협적이었다.
게다가 자금회수 기간도 매우 단축되었다. 세계은행은 몇 년이지만 헤지 펀드는 몇 달 혹은 며칠도 가능하다 헤지편드계의 제왕 조지 소로스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으로 런던에서 유학 후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는'인간의 행동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다시 말해 결과가 기대치와 다를 수도 있다 인간이 하는 일이란 대체로 불안전하기 때문이다.'
소로스의 재귀성 이론이 (금융시장의 참여 주체가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면서 행동하기 때문에 시장의 변화와 상호작용 역동성을 고려해야 한다)에 따르면 금융시장은 완벽하게 효율적이거나 이성적일 수 없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란 비이성적인 수많은 투자자들이 무지와 편견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할 수 없는 것이다. 소로스가 이끄는 퀀텀펀드는 공매도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공매도란 가격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고가에 매도한 후 가격이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재매수해 되갚는 방식이다.
1992년 9월 영국의 중앙은행은 소로스의 파운드회사의 매도 전략에 무릎을 끊었다 매일 수조 달러를 운용하는 외환시장과 외환보유고가 얼마 되지 않았던 영국 재무부가 맞붙었으니까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국제 교역량과 금융 거래가 늘어나면서 세계경제의 취약성도 높아졌다. 한 곳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는 급속히 다른 곳에 전파되었다. 1993년 수학천재 두 명은 금융 혁명을 구상하게 된다 이후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사 설립하여 미국의 금융회사로 막대한 수익을 내며 급성장 그러나 1988년 러시아 금융위기 사태 이후 파산 구제금융으로 회생한다.
원인은 1998년 8월 17일 정치불안 석유수출대금 감소 사유화정책의 실패로 러시아 금융의 붕괴되었다. 다급해진 러시아 정부는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그 결과 세계금융에 충격에 여파가 미쳤다. 주가는 급락했다. 또한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투자자들이 불안한 군중심리도 고려하지 않았다.
문제는 또 있다. 롱텀캐피털은 주식 시장의 5년 동안 자료에 근거하고 그런데 1987년 주식 대폭락 사태를 자료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 후에 일어난 금융위기도 자료에서 배제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들은 수학에는 능했지만 역사에는 무지했다. 또한 이론 자체는 완벽했지만 현실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중국의 금융시장은 영미권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호황에 이면에 의문이 남는다 이율이 상승하고 무역 불균형과 정치 변동이 심화 됐는데도 주가는 급등했다. 이런 모순 속에서 중국의 한 도시는 급성장했다. 충칭의 경제속도는 무척 빠르다 정부는 이곳을 세계금융의 지역으로 육성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재(2008년) 중국은 백만장자 34만 5천 명이 넘으며 억만장자도 100명 이상이다 중국에 뚜렷한 금융위기가 없었던 이유는 해외에서 자금을 지원받지 않고 자국 내 저축에서 조달했기 때문이다 해외자금을 동원에 투자 해기도 했지만 공장처럼 유동화가 어려운 직접투자의 형태가 많았다.
또한 중국은 막대한 저축예금 기반으로 금융 세계화의 흐름을 바뀌었다. 과거에 영미권 국가에서 아시아에게 차관을 제공했다면 부유한 나라 중국이 미국에 돈을 빌려주고 있다. 2007년 미국은 극심한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은 미국보다 25% 많은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중국의 1인당 GDP 2천 달러에 불과하다 어떻게 GDP가 22배나 많은 미국에 돈을 빌려주게 되었을까 그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보자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해 소비 천국인 미국에 수출했다. 물론 가격이 낮을수록 상품이 잘 팔릴 것이다. 결국 위안화의 환율 강세를 막고자 외환 시장에서 수십억 달러를 싸들였다.
한동안 이러한 전략이 미국에 유익했다. 미국의 대형 할인점은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에 아웃소싱(비용 절감과 효율성 증대를 위해서 업무를 외부에 위탁하는 일)을 주고 큰 이윤을 얻었다. 2006년 월마트는 90억 달러의 제품을 중국에서 외주생산했다 미국도 중국에 수십억 달러의 채권을 팔아 자금을 확보했고 미국의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소비를 중국에서는 저축을 하지만 부작용도 따랐다. 중국이 돈을 빌려 줄수록 미국은 더 차관에 의존했다. 2000년 이후 신규 은행 대출과 파생상품의 계약이 넘쳐 났는데 차이메이카의 영향이 크다. 중국경제는 미국의 금융위기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중국에 대미 수출에 차질이 생긴 것을 사실이지만 하지만 내구가 급증했고 8% 이상 성장했다. 100년 전에도 경제적 공생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당시 금융의 중심지였던 영국과 유럽의 산업을 대표하던 독일이 공생 관계였는데 얼마 못 가서 전쟁으로 끝이 난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도 공생과 경쟁을 거듭하다가 대립할 수도 있다. GDP로만 볼 때 빠르면 2027년에 중국이 미국을 앞선다는 예측이 나왔다. 그래서 미국에 경기가 침체될수록 자유무역에 대한 비판도 심화될 것이다
시작은 선의 경쟁이었다 하더라도 중국이 돌연 미국에 자금 공급을 풀면 중단한다면 경제전쟁이라는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차이메이카 본질은 그 자체 혼란일지도 미국과 중국의 분쟁이 기우 일 수도 있지만 현 경제계를 이끄는 사람들이라면 인류 역사를 통틀어 안정과 번영이 영원한 시대는 없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 날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올를지 모른다
오늘날 금융시장은 4천 년에 걸친 경제적 진화의 결과이다 하지만 지구촌 금융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호황과 불황 비이성적인 침체는 반복하고 있다 어찌 보면 체제가 너무 복잡해서 위기에 취약한 것인지도 모른다. 돈은 인류에 진보에 큰 몫을 했다 금융의 혁신은 세상을 연결하고 통합했다. 금융이 없었다면 인류는 농경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금융의 인간 본성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인다 금융공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하고 기분이 들떴다 어느새 가라는가 하면 역사적 교훈을 쉽게 망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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