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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타리/경제의 다양한 이야기

자본의 힘 3 거품과 붕괴

by thanks tree 2023.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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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지배하는 세력은 사기업 중에서도 다국적 기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남아메리카의 광대한 자연을 인간의 힘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상상하기는 힘들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능케 한 기업이 있다. 150억 달러를 투자해서  볼리비아에서 브라질 동쪽 해안에 이르기까지 남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송유관을 건설했고 아르헨티나에 있는 파타고니아에서 수도 부에노스 아리에스 까지 659만 km 세계 최장의 송유관을 건설했다.

 

 현대 자본주의의 이러한 거대한 야망을 드러나는 시도는 바로 주식회사의 등장 때문에 가능했다. 16세기 회계와 신용거래에 혁신이 일어났고 17세기에는 채권시장이 탄생 다음 단계는 공동소유에 기반을 둔 유한책임회사의 출현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더욱 힘을 실어준 곳이 있다. 바로 주식시장이다 주식은 미래 세계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주식시장에서 그 가격이 결정된다. 

 

 때론 주식시장을 충격시장으로 돌변하곤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낙관적인 성향이 있다. 뉴욕증시가 동반상승할 때 투자자들이 도취감에 빠지지는 것처럼 연방준비위원회 전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 스펀은 '비이성 적 과열'이라고 표현했다. 중남미에 거대한 송유관 시업을 벌인 엔론사(1996년부터 2001년까지 6년 연속 '미국의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선정된 에너지 회사 2001년 회계부정 사기로 파산신청함) 두고 발생한 주식 과열 현상은 비이성적이고 그 거품이 터졌을 때는 그 결과가 참담했다.

 

 엔론 사태는 미 역사상 가장 큰 기업 사기였다 엔론 사태가 첫 주식사기는 아니었다.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금융역사를 통틀어 가장 놀랄만한 일이 있다. 존노는 살인자에 상습적인 도박꾼이었지만 금융행위에 만큼은 천재였다.

 

 자산가치에 처음으로 거품을 일으켰으며 이 때문에 프랑스의 시민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존노는 한때 미국영토의 1/4 소유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역사상 최초의 주가 폭락으로 그 모든 것을 잃었다. 에든버러 암스테르담 파리 뉴올리언스 거쳐 베네치아에 한 인간의 벼락출세와 파멸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존노는 1671년 영국의 부요한 금세공장 아들로 태어났다 1694년 한 여인을 두고 결투를 벌이다가 죽여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존노는 감옥을 탈출해서 네덜란드로 도피하게 된다. 1690년 암스테르담은 세계 금융 혁명지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전쟁 때문에 국영 복권을 판매했고 세계최초의 중앙은행을 설립했다.

 

 주식회사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던 네덜란드 상인들 때문에 생겨날 수 있었다. 이들은 주로 아시아 지역과 거래를 했다. 동인도는 향신료 때문에 매력적인 곳이었다. 아프리카 최남단에 희망봉 그곳을 향해는 무척이나 길고 위험했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공동으로 출자에 위험을 분산했다. 그 결과 동인도 회사가 여섯 곳이나 생겼다.

 

 1606년에는 동인도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주식 즉 미래에 발생할 수익에 대한 권리를 일정 부분 부여했다. 3년 후 주식을 환불하는 것은 불가하지만 주주들에게는 되파는 것은 허용했다.  주식의 등장은 금융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수요와 공급에 법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사례를 창조한 것이다.

 

 동남아 전역에 공장과 상점을 세우고 나니 이번에는 경쟁자인 스페인과 영국의 진출을 견제해야만 했다. 당시 동인도회사는 전함 40여 척과 1만 명에 해당하는 사병을 거느렸다. 이들에게 군사력은 무역을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이들의 성공은 여느 대기업처럼 비용절감을 위한 규모의 경제 네트워크의 외부성(한 사람의 행위가 제삼자의 경제적 후생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 즉 취합된 정보에 활용 능력에 있었다.

 

 바타비아 함선은 반은 전함 반은 다국적 기업이었던 것이다. 1920년 동인도 회사는 향신료 무역을 독점했다. 동인도 회사는 매년 이익에 16.5% 주주들에게 배당했다. 네르 바스카 가문의 투자금 6천 길드는 50만 길드의 자산으로 늘어났다. 당시 존노는 동인도 회사와 증권거래소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은행  3자의 역학관계에 매혹되었다.

 

 천재 금융가의 존노는 이들 간의 관계에서 결함을 발견한다 우선 주식을 제한한 것부터가 못마땅했다 은행의 보수적인 운영이 이해되지 않았고 상인들 간의 자금이체 가능하도록 시스템 만들어 놓고 막상 시민들의 사용할 수 있는 은행권은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점 무역회사와 발권은행이 합쳐진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716년  존노는 자신의 네덜란드에 새로운 금융계획을 선사하는 계획을 세운다 1716년  존노은 자신의 주식이론을 실험할 무대로 프랑스를 선택했다 그런데 왜 프랑스는 그를 받아들인 것일까?

 

 이유는 프랑스의 재무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루이 14세의 잦은 전쟁 탓에 빚더미에 올랐다 루이 15세가  세상을 떠나자 올레앙 공이 섭정하는 동안 프랑스는 3번이나 국가부도가 났다. 존노의 생각은 네덜란드식 은행을 세워 프랑스경제를 살리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왕실에서 보면 통합 운용으로 정부의 빚을 은행주식으로 전환했고 군주는 원하는 만큼 돈을 발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존노의 두 번째 계획은 독점 무역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 원대한 계획의 중심에는 신대륙이 있었다. 존노는 신대륙이 있었다 존노는 새 식민지와 독점무역권을 따냈고 이후 프랑스 국민들은 주식 구매를  권유받았고 이사진 명단 이름 앞줄에는 존노의 이름이 맨 앞에 있었다. 이것은 통화 팽창 적에 가까웠다.

 

 프랑스 왕실에서는 공공부문에 부채를 독점 무역권과 세금징수권이 있는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어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1716년 9월 주가는 액면가의 10배를 넘어섰다 주가가 오를수록 구매의 욕구는 커져만 갔다. 전형적인 주가 가열사태였다. 이때부터 프랑스에 백만장자의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그에 반해 존노는 '내가 곧 경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랐다. 존노는 재무장관까지 올랐다. 하지만 존노는 멈춰야 할 때를 몰랐다 오히려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를 올리려고 화폐를 더 찍어낼 궁리를 했다. 당시 존노가 소유했던 마젤린 궁에는 그의 회사와 은행이 나란히 있었다 자신의 회사의 주가를 끌어올리려면 복도를 지나 주식발행 사무소에 들었다가 다시 은행권 발행 사무소에 들르면 그만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부거래였던 것이다 그의 행위는 오늘날 '폰지 사기'에 해당한다 다단계 투자 사기처럼 뒤에 들어오는 원금으로 앞사람에 이익을 챙겨주다 끝나는 식이다 존노는 타사를 인수하고 배당금을 마련하기 위한 재원을 주식판매금으로 마련했던 것이다 폰지사기처럼 언제 가는 터 질 거품이었다.

 

 

1720년 초 프랑스는 미시시피 광풍, 투자 거품에 휩싸였다. 하지만 아무리 숲이 울창해도 하늘을 전부 가릴 수는 없다 존노는 프랑스령  루이지애나에서 큰 수익을 낼 것을 장담했다. 존노는 수천 명의 개척민들을 모집 후 약속에 땅 루이지애나로 떠났다. 불행하게도 약속에 땅 루이지애나는 늪지였던 것이다 1년이 지나 80% 이주민들이 황열병으로 쓰러지게 된다 

 

 존로의 성공뒤에는 대중들의 믿음이 있었다. 미시시피 사건을 대중들의 믿음을 배신한 사건이었다. 주식의 하락에 이어 주가는 곤두박이칠 쳤다 성난 군중들은 돌을 집어던졌고 12월이 되자 미시시피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결국 프랑스의 왕가의 재정 파탄이 프랑스의 혁명을 불러오게 된다. 

 

 금융가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은 1929년 10월 24일 뉴욕 월가의 주가 대폭락 사건이다. 이날은 검은 목요일이라 부른다 이날 이후 미국 주가는 3년 정도 추락하다 바닥을 칠 때는 무려 86%나 빠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대불황을 몰고 왔다 미국의 GDP 급격히 감소, 실업률 25%나 육박했다. 그렇다면 왜 주가 폭락이 일어난 것일까? 

 

 기술적 분석은 얼마나 가능하지만 핵심은 집단 심리에 있었다. 제아무리 똑똑한 주식 투자자라도 강세장에서는 '비이성적 과열'에 사로 잡히게 된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무리들이 방향을 틀 때는 무섭게 돌변하게 된다. 조금만 낌세에도 벼랑으로 돌진하게 마련이다. 소 때는 한 마리가 공포를 느끼면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달리게 된다 결국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인간의 심리를 반영하여 순식간에 탐욕이 공포로 바뀌고 우울증을 넘어 신경쇠약증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시장을 통계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면 폭락이나 폭등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중 대부분 평균에 머물다가 예측할 수 없는 수치에 이를 때도 있다.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정규분표 곡선은 좀 더 완만한 곡선에 가깝다. 그 이유는 그 빈도가 낮거나 높은 움직임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긴 꼬리 두툼한 꼬리이다.

 

  엔론사의 파산한 지 2001년 이후 7년이 지났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어져가고 있다. 엔론사의 분식회계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엔론사는 작은 천연가스 주식회시로 출발했고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엔론사의 거품은 주인공만 바뀌었지 미시시피의 거품과 유사하다.

 

존로가 프랑스의 재정계획을 목표로 삼았다면 엔론사 켄 레이는 국제 에너지 시장을 개혁하고자 했다. 거대 전력회사들은  

에너지를 직접 생산해서 소비자들에게 팔았다. 켄레이는 에너지 은행을 만들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중개해서 에너지를 팔고자 했다. 전 세계적으로 부는 에너지 민영화사업의 추세를 타고 엔론사는 자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중남미 지역에서는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이르기까지 대규모 송유관 사업을 벌였다. 

 

 엔론사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흙 물 공기와 같은 자원을 비롯해 심지어 인터넷 대역폭까지 거래의 대상을 삼았다.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유동적으로 생성될 때 거품이 생성된다. 1990년 2월부터 1995년 2월까지 기준금리가 상승한 결과 엄청난 유동성이 확보됐다 엔론사의 주가는 3년 동안 20달러의 주가가 90달러가 됐다.

 

 당시 엔론사의 임원들은 연봉에 훨씬 넘는 금액의 4~5배를 보너스로 받았다. 엔론사도 역시 정교한 사기극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장부조작을 통해 자산을 증액 특수목적법인 설립해 대차대조표상의 부채를 숨겼다. 엔론사는 손실을 이익으로 둔갑시키고자 다양한 방법을 섰던 것이다. 야망이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임원들은 수억 달러 주식은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물론 시장에는 주가가 계속 오를 거라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오히려 엔론사의 분식회계는 서양 금융권에 관심을 끌었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부정회계로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미래에 대한 과도한 기대치가 과도한 낙관에서 과도한 비관으로 바뀌고 사람들의 탐욕이 공포로 돌아서는 순간 주가는 또다시 불규칙한 곡선을 그릴 것이다. 마치 안데스 산맥 같이 투자자가 바라는 것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평탄한 언덕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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