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돈의 세계이다. 금전 화폐 옆전등 돈을 일컫는 말은 매우 다양하고 많다. 돈을 머라고 부르든 간에 돈에 울고 돈에 웃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세계의 큰손들이 나락에 떨어지는 동안 돈을 은행에 예금해야 할지, 금고에 넣어두어야 할지 걱정했다. 2007년 여름에 시작된 금융위기 미국에 국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어떻게 거대한 회사들을 부도로 몰아가고 대서양의 은행들을 국유화시킬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을까
전 세계의 경제를 얼마나 초토화시켰는지 지금부터 돈이 우리에 삶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과정을 살펴봅시다. 오랜 세월 동안 내려져온 금융사의 뒷이야기가 있다. 은행의 지원으로 르네상스의 운동이 전개되었고 채권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전쟁에 승패가 갈렸다 주식시장을 기반으로 대영제국이 일어 썼고 화폐가치의 붕괴가 프랑스혁명을 초래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돈에 번영은 곧 인간의 번영이었다 하지만 결코 순탄치만 하지 않았다. 금융사는 반복되는 위기의 역사였고 오늘날의 금융위기도 그중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출렁이는 부동산과 급속한 산업화까지 금융의 막대한 힘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은행이 파산하고 금융시장이 붕괴되고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서브프라임과 프라임 대출의 차이는 무엇인지 돈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만 이해가 쉬울 텐데 바로 이점 때문에 금융사가 학술적 가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라고 하지만 세계 금융계를 떠도는 돈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올해 미국에 총통화 공급규모는 8조 7천억 달러로 작년보다 12% 늘었다. 물론 그 돈 중 상당 부분을 챙기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금융위기라고 하지만 20세기 초 펀드 매니저로 유명한 조지 소로소는 작년에 24억 달러를 벌었다.
미국 평균연봉에 4만 천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월가라면 잘했다고 칭찬할 것이다 돈이 없는 세계를 한번 상상해 볼까
약 5000년 전 잉카제국에는 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잉카인들은 귀금속은 미적인 가치로만 평가했다. 금은 해님의 딸 또는 달님의 눈물이라고 불렀다.
공산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훗날 잉카제국에서도 노동력은 가치에 단위였다. 그런데 1532년 돈 때문에 바다를 건넌 유럽의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엘도라도에 전설을 따라 페루를 찾은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스페인 정복자들이었다.
까하마르가 전투에서 잉카 군을 무찌른 정복자들이 본격적으로 금을 찾아 나선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볼리비아 지방에서 부에 언덕이라 불리는 통치 250년 동안 안데스산맥 광산에서 무려 6만 2천 톤 이상의 은을 캐냈다. 잉카인들은 유럽인들이 왜 금과 은에 열광하는지 의아해했다.
금과 은 가치의 저장소 곧 돈이었다. 계산에 단위, 기대할 수 있는 권력 캐낸 은은 수은으로 정제한뒤 은괴, 은전으로 만들어 유럽으로 보냈다. 하지만 막대한 은으로도 스페인 제국에 경제적 정치적 몰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은의 가치를 하락시킬 정도로 은을 많이 채취한 것이 문제였다.
똑같은 물건에 더 많은 가치가 메겨지면서 물가는 오르기만 했다 돈은 그 교환가치만 값어치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은전, 조개, 금괴, 은행권 그 무엇이 되었간에 태초부터 오늘날까지 변화지 않은 진리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기만 한다면 흙이 은전보다 가치가 있을 수 있다.
4천 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점토판에 다 금융거래를 기록 중요한 것은 점토판 주인에게도 곡식을 주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20파운드짜리 지폐를 살펴보면 눈에 익은 문구가 있다. '소비자 요구 시 20파운드를 지불할 것을 약속합니다' 사실상 지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고대 바빌론 에 점토판과 마찬가지로 그저 지불하겠다는 약속에 불과하다.
미화 10달러 뒷면에는'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신을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현재 사람들은 종이 화폐에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돈에도 만족한다는 것이다. 외환딜러는 돈을 싸고 파는 일을 한다 하루에 3조 달러가 이러한 거래형태로 시장에 오고 간다. 모두 신용만으로 가능하다.
만질 수도 없는데 그저 믿을 뿐이다. 바로 이런 점을 스페인 정복자들은 간과한 것이다 돈이라 바로 믿음이라는 사실을 화폐를 발행한 중앙은행에 대한 믿음, 수표를 발행한 은행에 대한 믿음 돈은 금속이 아니라 믿음인 샘이다.
종이나 은 점토 또는 컴퓨터 화면이 든 받는 이가 믿으니까 그뿐이다 돈은 상화체제의 근간을 이루며 세계사를 다시 쓸 정도로 큰 가능성을 열었다. 오늘 빌려준 돈을 내일 혹은 모래에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 영어 크레딧 credi 신용, 라틴어 credo 나는 믿는다 가 어원이다.
신용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세계의 경제사는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현대 문명이 대출과 차용이 얼마나 의존적인지 모른 채 살고 있다. 초기의 대부업자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고마워하기는커녕 천대를 받았다. 서기 천 2백 년 전 이탈리아 북부지역 도시국가들이 서로 다투며 난립하던 곳이다.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위험한 시절이었다.
로마제국이 남긴 유산 중 하나는 단위가 커지면 숫자체계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각기 다른 7가지 주화가 유통되던 피사이에서는 상인들 중심으로 숫자 정립이 절실했다. 간단한 거래에도 주판이 필요했다. 반면에 동방지역과 이슬람 지역 중국 송나라의 경제활동은 훨씬 더 발달했다.
유럽은 근대적인 재무체계를 수입해야 했다. 이때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같은 젊은 수학자가 탄생한다. 피사이 출신 세관원의 아들로 그에 이름을 딴 피보나치수열로 유명하다. 피보나치 숫자는 회계, 환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자 계산에 계산법을 적용했다. 이후 수학을 응용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금융제도가 발전하기에 적합했다. 특히 동방과의 교류가 많았던 베네치아는 대부업의 실험장이 되었다. 어떤 대출이든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배가 침몰할 수도 비록 짧은 향해 일지라도 대부업자는 그 향해에 대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 보상을 우리는 이자라 부른다.
베네치아에서 해외무역을 금전거래 없이는 불가능했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국제무역에 근간을 이루고 있다. 베네치아에 2주 이상 머무르는 유대인들은 등에 커다란 노란색 원을 그리거나 케토 누오보라는 특정구역에서 갇혀 살았다. 비록 천대받기는 했지만 베네치하에서 유대인의 존재는 용인했다. 그 이유는 기독교도 상인들이 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대금업이다.
피보나치가 이자를 계산했을지 몰라도 그 이자를 거두어들인 것은 샤일록이었다. 은행의 어원은 방코banco 의자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했다. 상인들이 왜 이곳 유대인들에게 까지 돈을 빌리려 왔을까 이자를 받는 것이 기독교도들에게는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고리대금업에 대한 중세의 제한은 유럽의 금융발달을 가로막았다. 지옥에 간다는데 어떤 상인이 대금업에 손을 대겠습니까 단테에 따르면 고리대금업의 자리가 제7지옥에 따로 있다고 한다.
이자를 받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도 금기사항이다. 같은 유대인들끼리는 안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빌려주는 것은 문제 삼지 않았다. 고리대금을 제공할 대가로 유대인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를 받았다. 게토누오보 지역에 갇혀 살았고 유대인이라면 돈이라는 고정관념도 수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원시적 형태의 대부업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은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세틀스톤이다 철제 건축 양식으로 서구에서 험한 동네 중 한 곳이다. 이곳에 남성 평균 수명은 64세로 방글라데시의 남성 평균수명보다 조금 낮다.
고리대금업자에게 연금 카드를 주면 돈을 빌려주고 연금이 나오면 그 카드로 돈을 받아 이자에 더에 갚는다. 샤일록의 영업구조와 똑같다. 하지만 이곳 글래스고에서는 채무불이행이 불가능하다. 종종 상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으면 손해가 크기 때문에 고리대금업자는 탐욕스럽고 무자비 해질 수밖에 없다.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에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에 고리대금업자들은 천대를 받았다. 대부업자들은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관대해져도 돈을 벌지 못하고, 비정해도 돈을 벌지 못하기에 정답은 덩치를 키워 강해지는 것이다 드디어 은행을 만들 때가 온 것이다.
15세기 이탈리아는 신용 때문에 핵심역할을 해온 케토 지역에 합법적인 은행이 생겼다. 이와 함께 한 가문이 부흥하게 된다 바로 메디치가 다 메디치가의 번성과 함께 신용의 시대가 도래한다. 과거와는 달리 영광스러운 일이자 새로운 권력 수단이 됐다.
메디치가의 권세는 피렌체의 곳곳에 남아있다. 400년 동안 메디치가의 딸들이 황실로 시집을 갖고 아들 셋은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메디치가 미칼렌젤로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까지 르네상스 전체를 후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무슨 돈으로 이 메디치가 이 많은 미술품을 사들였을까
1390년대 이전만 해도 메디치가는 동네 불량배에 불과했다. 믿을만한 금융이 아닌 저질 폭력으로 유명했다. 그러던 중에
지오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가 등장했다. 그는 메디치가 의 영업을 합법화하는데 힘썼다. 결국 고리대금 방지법을 피 할 수 있는 회계법으로 그 꿈을 이루게 된다.
센스 있는 환전상이라면 무역거래 이자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환전에 대가로 수수료를 받았던 것이다. 가불을 받을 경우 그 기간만큼 수수료를 받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메디치가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에게도 보상이 주어졌다. 이자가 드러나지 않은 형태로 신용을 사고팔았다.
고리 대금업이 은행업으로 진화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메디치 은행의 성공은 규모보다 다양화를 추구 이전에 이탈리아 은행들은 단 한건에 불량채권에도 큰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메디치 은행은 조합형태로 운영이 됐다. 바로 이 분권체제가 엄청난 수익의 비밀이었다.
그 후 규모확장과 분산을 통해서 대출의 위험을 줄 일 수 있었고 이는 곧 채무자의 비용을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바로 고리대금업자와 은행, 샤일록과 메디치가의 차이였다. 그의 아들 코시모로 통해서 부의 축적은 권력의 축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부친이 사망한 후 코시모는 20년 후 피렌체의 군주나 다름이 없었다
교황은 말했다. '정치는 코시모의 집에서 이루어진다. 그가 선택하는 이가 관직을 맡고 법도 평화도 전쟁도 그가 결정한다. 우리가 부르지 않을 뿐 그가 왕이다' 150년 만에 메디치가는 뒷골목에서 유럽금융계의 큰 손으로 탈바꿈했다.
결국 메디치가에 의해서 현대금융업의 탄생했다고 봐야겠다. 돈으로 정치권력을 손에 거머쥔 세력은 메디치가 처음이었다. 귀족들에게 너무나 많은 돈을 빌려주었다가 손해를 입기도 했다. 어느 은행이던 불량채권은 골칫거리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미국은 채무를 발판으로 성장한 나라다 메디치가 부유한 상인들을 상대한 반면에 미국은 은행은 누구에게나 돈을 빌려주었다. 차량 소유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급여를 담보로 돈을 빌려 빌릴 수 있는 가게도 있고 백화점만 한 전당포도 있다.
전당포에 맡길 만한 것이 없다면 25달러의 받고 피를 팔면 된다. 이는 파산자들을 먹고사는 경제이다 하지만 고리대금업자들이 돈 대신 살을 떼어가는 시대와는 천지차이다 이곳에는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도 대부업으로 돈을 버는 요령을 터득한 것 같다 이곳 주민들은 빚지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자본주의 경제가 손쉬운 파산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1996년에서 2006년 매년 100만 건에서 200만 건 종도 파산건수가 접수되었다. 대부분 돈을 갚는 대신 파산을 선택한 것이다. 중세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는 파산은 무척 심각한 것이었다. 미국 자본주의에 특징은 빚을 졌다 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98년부터 모든 국민에게 파산법 7장과 13장에 따라 채무 청산과 개인회생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보장되는 천부인권에 파산권도 보장된 것이다.
미국의 법은 기업가를 위해 존재한다. 새로운 사업이 가능하기 위해서 한 두 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에 자산가가 내일의 억만장자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미국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초기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소설가 마크트웨인 헨리포드 이들의 성공은 실패 후 재기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은행의 경우는 대출의 일부가 연체 됐다고 생각하면 된다. 채무를 없애는 게 아니고 채무 이행계획을 다시 세우면 되기 때문이다. 대출은 경제성장의 기초이다 하지만 은행이 출현해야 고리 대금업에서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 은행이 해결책이라면 왜 지난해 은행이 파산했으며 파산 신청을 했을까 멤피스의 불량채권이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야기한데 이유가 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증권의 형태로 바뀌어 무분별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거래되면서 은행과 채무자의 정상적인 채무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다.
연은 금융의 혁신으로 멤피스의 가난한 동네에서 받은 주택담보대출을 CDO 투자상품으로 바꾸어 버렸다. 납을 금으로 만들고 쓰레기를 우량채권으로 만드는 연금술이 가능했던 것은 은행과 함께 현대 금융의 양대 축을 이루는 채권시장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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