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편 새로운 게임 2부
아시아의 금융 전염병은 이제 통제됐다. 그리고 금융 자본은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아냈다.
1998년 8월 러시아 모스크바
세계에서 주가가 가장 빠른 속도로 오르던 모스크바 주식시장이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의 경제 개혁은 멈춘 상태였고 러시아는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실패하지 않은 신흥시장을 찾았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윌리엄 맥도어 전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투자자들은 러시아가 과거 초 강대국이었으며 아직 많은 미사일과 핵탄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부유한 나라들이 구제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러시아는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그리고 통화는 폭락했다. 더 이상 위험은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모두 공황상태에 빠졌다. 모든 곳에서 시장은 얼어붙고 있었다. 경제위기는 마치 생명체와 같았다.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은 모두 사람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현상이 아니다 그 뒤에 어떤 상황이 오느냐'다.
이제 위기는 미국에 까지 도달했다.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명한 민간 펀드가 파산 직전에 놓여있었다.
롱텀캐피털 매니지 먼트(LTCM)
천억 달러의 규모 자본을 직접관리 했고 간접적으로는 1조 달러를 운영했던 사설펀드였다. 존 코자인 전 골드만삭스 회장 1990년대 , 일찍이 없었던 세계적인 규모의 자본 집중화가 일어났다. LTCM은 특별한 헤지펀드였다. 싱가포르, 도쿄, 런던, 뉴욕 등 그들이 활동하지 않은 금융시장이 없었다.
1998년 9월에 이르자 LTCM의 손실은 손댈 수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금융 전염병이 월스트리트까지 퍼진 것이다. ㅗ놀라운 것은 LTCM의 하나의 사설펀드의 위기가 전 세계 경제를 위협했다는 것이다. 만약 LTCM이 망한다면 경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단지 은행의 대차대조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가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세계 경제도 타격을 받을 상황이었다.
뉴욕 연방준비이사회는 긴급회의를 열고 미국과 유럽의 주요 은행 대표이사 회의를 소집했다. 진짜 문제는 누구도 LTCM의 도산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증권사나 은행의 최고 경영자는 애국자가 되라고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임무는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말은 'LTCM이 파산하지 않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 하지만 여기에 쓸 공적자금은 없다. 국민들이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히 회사를 구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익이 될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이었다.
은행들은 은행자금을 동원에 LTCM을 구제하는 데에 동의했다.
1998년 12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아시아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는 세계경제 8위 규모 브라질에도 도달했다. 하지만 이번엔 IMF의 구제금융이 신속하게 차관을 제공했다. 브라질은 IMF으 요구대로 재정지출을 줄이고 개혁안을 만들었다 그것이 효과를 발휘해 브라질의 문제는 해결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위기는 이제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후 정말 위기가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내 위기는 끝났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순식간에 파산할 수 있다는 것이 세계화의 불행한 측면이다. 한 나라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순간이다.
오늘날의 세계경제는 2차 대전 직후에 만들어진 제도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말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글로벌 시장에 맞는 새로운 게임에 규칙의 필요성이 대두 됐다.
금융시스템은 자동차의 완충장치 역할을 해야 한다. 세계화는 위험요소가 있다. 그러나 대안은 없다. 따라서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과 통제불능의 거품을 막아야 한다. '적극적인 국제정책이 없었다면 대공황 같은 심각한 경제 불황을 겪을 것이다. 앞으로도 금융위기의 메커니즘을 잘 이해해야 한다.'로렌스 서머스 전 하버드 총장은 말했다.
세계적인 논쟁의 시작
많은 미국인들은 세계금융 위기를 보면서 글로벌 경제에 대해서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 세계화 비판론자들에게 금융위기는 일종의 기회였다. 노동운동과 협력해 이런 운동을 대중의 불안을 반세계화 운동으로 발전시켰다.
1999년 12월 미국 시애틀
세계무역기구 WTO 세계무역에 관한 기초를 만드는 기구다. 139개국 대표들이 시애틀에 모였다. 국제무역에 확대를 위해서다. 반대 시위는 기습적으로 벌어졌다. 시애틀 시위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규합했다. 세계화의 특정 부분이나 그 자체 또는 원인에 대해 우려한 사람들이 모였다.
시위대는 다양한 이익 집단으로 이루어졌다. 대부분은 수천 명 단위로 버스를 타고 온 노동조합원들이었다. 티아리 미국 노총정책 국장은 WTO의 존재는 개발도상국과 노동자 그리고 환경보호에도 좋지 않다고 말한다. 1990년대 경제 성장으로 미국은 17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 하지만 노동조합 소속의 일자리는 오히려 급격히 감소했다.
AFL-CLO 미국노동총동맹-산업별 조합회의는 그것이 외국의 값싼 노동력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들은 전국에 있는 이 공장을 예로 들었다. 하루 5달러 받고 자전거를 만든다. 한 때 이 자전거들은 미국에서 생산되던 것이었다. 미국 노동자들은 외국의 노동자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도 노조도 없는 외국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기는 것은 다른 얘기다 이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새로운 형태의 무역은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문제를 만들어 냈다. 시장개방에는 실업 같은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그것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개방의 이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규칙을 만들어 기업들이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게 할 수 있다.
하지만 WTO 시애틀 모임에 참석한 개발도상국 대표들은 미국노동조합과는 전혀 반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국제무역이 확대되기를 바랐다. 가난한 나라들은 미국과 유럽정부가 자국의 강력한 노동조합과 기업들과 손잡고 국내산업을 부당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이람 라메쉬 전 인도 정부 경제고문은 작물을 예로 미국에 수출하는 모든 나라는 수출 쿼터를 받는다. 그것은 자유무역이 아니다. 통제무역이다. 미국은 인도에 마음대로 작물을 팔지만 인도는 미국에 자유롭게 팔 수 없다. 개발도상국들 대표들은 '지금은 크고 강하고 부유한 나라들이 이기적인 행동을 취할 때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클린턴은 WTO대표단에게 미국에 핵심산업보호 정책을 절대로 양보하지 말라고 했다. 회담은 실패로 끝났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자신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음 무역협상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무역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우리가 일방적 시장이 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선진국이 말하는 시장개방은 자기들의 고부가치 상품을 우리에게 파는 것을 의미한다. 벤자민 음카파 전 탄자니아 대통령은 흔히 공정경쟁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선진국이 훨씬 유리하다 만약 선진국 시장이 우리에게 개방된다면 보조금을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시애틀 시위 이후 세계화 운동의 주도권은 노동조합에서 시민운동 조직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단순한 반대에서 벗어나 해방을 위한 정치를 하려 한다. 즉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제도 구조와 틀 공동체와 이웃을 만들려는 것이다. 우리가 믿은 가치가 사회 정의와 상호원조 연대 직접 민주주의이다.
2000년 4월 미국 워시턴 D.C 세계은행/IMF
시위대는 다음 목표는 세계은행이다. 제임스 울펜손 전 세계은행 총재는 '세계화를 빌미로 우리를 격렬하게 공격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물었다.
하지만 반대세력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반세계화 운동과 그 속에서 표출되는 분노에는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 그 속에는 상실감과 소외감이 존재한다. 과거의 구조와 조직 과거의 노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현재의 시위와 충돌로 새로운 글로벌 경제를 향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빈부격차
세계화 때문에 세계가 빈곤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빈곤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더 커진 것은 사실이다. 단일 글로벌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가난한 나라들도 어떻게 하면 시장의 해택을 볼 수 있을까 논의가 시작됐다.
세계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불평등하다. 200년 전만 해도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에 불평등은 적었다. 전체 인류의 1/6에 불과한 소수의 나라들만이 근대적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인류의 절대다수 인 5/6는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 이 나라들 간 소득격차는 100대 1 일인당 $30000대 $300까지 벌어진다.
미국 같은 자본주의 국가들은 지금까지 개발도상국의 부자들과만 대화했다. 지금껏 잘못된 상대와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 고객은 언제나 제도권 밖에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성공에 이르는 도구이다.
데소토 제3세계 경제학자는 자본주의가 왜 제3세계에서 실패했는지 연구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서구에서는 잘 기능했지만 제3세계 국가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서양은 18~19세기에 자본주의의 필수요소 즉 사유재산권 도입했다. 그러나 3세계에는 사유재산이 도입되지 않아 자본주의 기능 할 수 없는 것이다.
페루 카하마르카
개발도상국과 공산국사에서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자산 분배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법적인 재산권 정확히 말하면 법의 바깥에 있는 재산권이다.
탄자니아 킬리 만자로
많은 나라에서는 사유자산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개발도상국이 그렇듯이 자신이 경작하고 있는 땅이 정말로 자신의 소유하고 있는 땅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 이 땅은 누가 소유하고 있습니까? 이 땅은 우리 것입니다. 한 농부에서 이 땅을 샀습니다. 소유권 증서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땅은 우리 재산입니다. 어떻게 이 땅이 당신 소유임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내가 여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 2월 영국 워럭
'우리는 지금 과거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기회를 갖고 있다. 즉 모두가 함께 번영하는 글로벌 경제를 만들 기회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말했다. 부시 정부는 클린턴 정부의 자유 무역 정책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세계화는 사실상 국경을 초월하는 자유의 승리이다. 또한 수십 억 인류를 질병과 굶주림과 빈곤에서 구할 희망의 약속을 담고 있다.
2001년 2월 멕시코 산 크리스토 발
빈센트 폭스 전 멕시코 대통령은 '멕시코의 1인당 소득은 매우 낮다. 25년 전과 같다. 우리는 변해야만 한다. NAFTA를 확대하는 것 즉 세계가 더욱 통합된 무역 협정 말이다' 말했다.
멕시코 외무장관에 좌파 인사를 임명했다. 그는 한 때 피델카스트로의 친구였고 글로벌 자본주의 비판자였다.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를 짓누르는 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하다 선진국과 후진국 내부에서 또 선후진국 사이에도 불평등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므로 좌파는 어느 때보다도 더 큰 대의 더 존재 이유를 가진 것이다.
캐나다 퀘벡시
퀘벡시에서는 민주주의로 선출된 중남미의 34명의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었다. 반세계화 운동가들이 다음 목표는 퀘벡시 정상회담이었다.
2001년 4월 미주 정상회담
정상회담의 의제는 무역 빈곤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었다. 참석자들은 다양한 사회나 다양한 권력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회의에 참여한 개발도상국은 이미 세계화를 수용한 상태였다. 여러 사람이 약소국과 빈곤층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대로 놔두면 결코 빈곤에서 탈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지만 방법에 대해서는 합의는 이루지 못했다. 그렌쳉 킹 미디어 운동가는 우리는 전국을 돌며 크건 작건 시위가 벌어지는 곳마다 인터넷망을 설치했다. 원하면 어디든 찾아가 도와주었다. 인터넷망을 통해 대안과 비판 다양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면 성공 가능성이 있다. 우리의 성공은 자유무역 협정문을 불태우는 것 WTO를 해체하는 것 그리고 세계 상위 1%가 가진 권력을 뺏는 것이다.
시위대가 극단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규제주의자들이 마치 중도인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의도했던 결과를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위대는 결국 무역 규제주의자들을 돕는 형국이 됐다. 반세계화 운동의 여파는 크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계속됐다. 처음 시위가 벌어졌을 때 좌절 했다. 시위대가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자들이 역할은 해결책제시가 아니라 비판이라는 것이다. 비판에 대응해 해결책은 제시하는 것은 바로 체제 속 내부자들이 임무라는 것이다. 즉 국경을 넘나드는 테러리즘과 인종 종교 민족 부족갈등에 의해 망쳐질 수 있고 아니면 세계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번영하는 시대가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9월 11일
9.11 전까지만 해도 위기는 있을 수 있지만 세계화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그 이후 세계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 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9.11의 슬픔 속에서도 나는 희망을 봅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강화할 기회가 온 것이다. 9.11 사건 이후 반세계화 운동은 이미 한풀 꺾였다.
대표단은 시애틀에서 할 수 없었던 타협안을 만들 수 있었다. 개발도상국 경제 개발에 우선적 지원하기로 한 이른바 도하라운드 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하룻밤사이에 만들어 낼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해결책은 여러 나라들이 꾸준한 협상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진화해 나갈 것이고 실수를 통해서 발전하는 것이다. 정답이 원래 있다거나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해답을 갖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세계화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 경제라는 새로운 게임에 대한 규칙의 논란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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