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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타리/경제의 다양한 이야기

제10화 미국,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꿈

by thanks tree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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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미국,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꿈

 

  아메리카 대륙북부에 펼쳐진 나라 미국, 23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이 나라를 기적과도 같은 속도로 성장해 21세기 초강대국이 된다. 그들은 유럽문명을 기초로 삼아 독창적인 발전 방향을 찾아냈으며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에 줄 곧 세계무대에서 강대국의 지위를 지켜왔다.

 

  500여 전년 만해도 이 광활한 대륙은 인디언의 땅이었다. 천부적인 열정을 가진 그들은 자신들만의 풍습을 통해서  자신들만의 역사를 써갔다. 15세기 무렵 유럽인들이 이 미지의 대륙을 발견한다. 그 후 유럽 여러 나라들로부터 이 주민들이 몰려들었고 식민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8세기 영국은 북아메리카 대서양 연안에 13개의 식민지를 건설한다. 미국의 역사는 영국의 세웠던 13개의 식민지로부터 시작된다.

 

  미국 동부의 작은 마을 윌리엄스버그 이 마을은 식민지 당시의 생활을 보여주는 역사공원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마치 타이머신을 탄 것처럼 200 여전으로 빠져든다. 조용하고 질서가 있는 마을 이곳은 우리에게 진실의 역사를 담은 한 폭에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18세기 월리암스버그는 버지나아주로 식민지 총독의 소재지였다. 총독부는 대영제국의 권위를 상징했다.

 

 식민지 생활에 관한 문제는 모두 식민지 의회를 통해서 결정됐다. 의회 구성원은 다른 직업, 다른 분야, 다른 계층 사람들의 투표를 통해서 선출됐다. 이 의회는 식민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기구였다. 의회 건물은 총독부와 동일한 권위를 가진 유일한 건물이었다. 이 영국에 식민지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 세워진 다른 강대국의 식민지들과는 달랐다.

 

  영국이 통치했지만 이 마을은 법률적 권리를 갖고 있었다. 이런 식민지는 대부분 스스로 관리를 해야 했다. 

'북아메리카 식민지들은 어떻게 이와 같은 특수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 또 '이런 자치운영관리체계는 어떻게 형성됐을까?'라 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이 역사는 한 척의 이주민 선박에서 시작된다. 1620년 종교탄압에서 쫓겨난 100여 명의 영국인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출발했다. 자유로운 종교 성지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청교도들은 어떻게 꿈을 실현해 나갈 것인가? 이 낯선 땅에서 어떻게 생존해 나갈 것인가?  메이플라워호가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하기 직전에 선박에 있던 41명 성인 남성은 서약서를 쓰게 된다. 메이플라워의 서약서로 상징적인 의미는 미국 최초의 사회, 정치 협약 또한 그들이 세운 공정한 법률로 자치관리를 실시한 것이다.

 

  기대심과 꿈으로 가득한 청교도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왔다. 그중에는 유럽 다른 여러 나라, 각기 다른 계층, 다른 신앙을 가진 자들, 탐험가,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들도 있었다.

 

  서류상 그들은 영국인이었고 영국의 통치를 인정했지만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국왕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관리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 자치 조직을 만들어 서로 도와야 했으며 점차 하나의 관리 방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유는 사람들을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게 했고 여러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독립된 권리를 갖게 했다. 하지만 왜 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신대륙의 생활은 계속이지지 못한 걸까? 무엇이 이 신대륙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이며 무엇이 이곳에서 세계 대국을 탄생시켰을까? 질문에 답을 얻고자 한다

 

  18세기 중엽 대영제국은 영토확장 시작, 먼저 스페인을 물리치고 북아메리카에서 7년 동안 프랑스와 전쟁 끊이지 않는 전쟁은 대영제국의 국고를 바닥나게 했다. 그들은 이 식민지에서 막대한 세금을 추가로 걷어서 재정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북아메리카 식민지로부터 징수하기로 한 인지세는 영국의 의회에서 결정 당시 영국의회는 식민지 대표가 없었다. 이것은 '메이플라워 서약서'의 근본적인 원칙을 어긴 것이다. 대영제국이 직접 세금징수 하자 세금징수에 저항하는 사건이 곳곳에 발생했다. 이로 인해 대규모의 영국군이 신대륙에 주둔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군대의 주둔지를 마음대로 정했고 민간 주택까지도 침범 또한 식민지 의회도 감시를 받게 된다.

 

  영국지배하에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메이플라워 서약 이후 이어져온 자치운영에 전례 없는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역사의 갈림길에선 신대륙의 사람들 결국 그들은 투쟁의 길을 선택한다.

 

  1775년 4월 19일 신대륙 북동부에서 첫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는 맑고 고요한 하늘에 울려 퍼졌고 대륙의 역사를 뒤바꿔놓았다. 매사추세츠 렉싱턴에서 영국군과 아메리카 민병대 사이에서 시작된 최초의 전투 이 한 발 총소리에서 시작된 미국의 독립전쟁이었다.

 

  1776년 7월 4일 13개의 영국의 식민지인 북아메리카는 독립선언을 발표하고 미합중국을 결성한다. 이들은 대영제국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했다. 이 날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이 식민지는 유럽 여러 나라의 지지 바탕으로 대영제국과 8년간의 긴 전쟁을 거쳐 독립을 이루어냈다.

 

  신대륙에 새로운 국가가 탄생한 시간에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8세기 후반 세계 패권을 장악했던 영국은 제1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있었다. 절대왕정의 권력을 바탕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던 프랑스는 대혁명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고 독일은 국가 분열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러시아는 18세기말 표트르 1세가 주도한 개혁이 성공하면서 점차 강대해지고 있었고 중국은 청나라 건륭제 시대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당시 북아메리카에 나타난 새로운 국가는 당시 세계 무대에서 보잘것없는 국가였다. 독립하기 전까지 100년 동안 대영제국 보호 아래서 발전해 왔다. 북부에 상공업, 중부에 농업, 남부에 플랜테이션 농업 이 모두 영국의 자유무역체계 안에서 발전해 왔다.

 

  독립직후 13개 주는 하나의 연약한 연맹에 불과했다. 그들은 무역도 할 수 없었고 통일된 화폐도 없었으며 독자적인 외교정책도 펼 수 없었다. 전쟁을 통해 독립을 얻었지만 나라의 안정과 번영은 실현되지 않았다.

 

  1787년 각 주에서 파견된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서 제헌의회를 개최하였다. 즉 연방헌법 제정 이는 우리가 연합하지 않으면 유럽 열강들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연방정부가 필요하다.라고

 

  조지 워싱턴은 국왕의 제안거절 그의 존재는 침묵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헌법의 보장 아래 국가의 주권은 주정부에서 연방정부로 옮겨졌다. 동시에 각 주는 헌법 규정에 의해서 자치권을 갖게 됐고 연방정부는 이를 간섭할 수 없었다. 1789년 4월 워싱턴은 1대 대통령에 취임 

 

  연방 헌법의 제정은 진정한 나라 미국의 탄생을 알린다. 이는 경제헌법이라도 경제활동에 있어서 개인과 주정부, 연방정부 간의 역할을 분명히 했고 미 경제발전의 법률 간의 자유를 보장했다. 즉 경제체제로부터 경제독립의 체재로 전환했다.

 

  통일된 정부를 가지게 된 새로운 나라는 하나의 통일된 시장, 통일된 화폐, 통일된 조세제도를 갖게 된다. 정부는 경제 운영에 있어 영국에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직접 도입했다.

 

  1791년 2월 미국에는 최초로 전국적 규모의 은행이 설립 이를 통해 국가 기간산업 도로, 운하, 다리등 시설물들을 건설했다. 이 시기 유럽 산업화의 주역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1789년 미국의 최초의 방직제조회사 설립 미국의 초기 산업혁명의 막이 오른다.

 

  그 후 60년 동안 300만 인구가 3천만 명으로 증가  이주민의 폭발적 증가는 황무지 개발에 노동력이 되어주었고 과학기술에 발전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주었다 1860년대 미국의 경제발전 수준은 대다수 유럽국가을 초월 여전히 연방정부의 힘은 미약했다.

 

  목화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흑인들이었다 흑백이 선명한 노동의 현장으로부터 미국사회의 모순이 드러났다 당시 북부에서는 공업과 상업이 발전하고 있었고 자본주의 제도를 실시하고 있었다. 반면 남부에서는 플랜테이션 농업을 바탕으로 농장과 경제를 지배하는 노예제도를 실시하고 있었다.

 

  남부의 이제도'사람이 모두 평등하다'는 건국이념과 모순, 노예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한했고 국가의 산업발전에도 걸림돌이 된다. 이런 노예제도를 폐지하면 대다수의 주 정부가 연방정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와 노예제도가 공존하는 연방국가였고 자유와 노예를 함께 인정했던 것이다 

 

  1860년 11월 6일 노예제 폐지 주장한 링컨 대통령 선거 승리 남부 일부는  주정부를 연방국가에서 탈피 주장 1861년 남부의 7개 주는 연방국가에서 탈퇴 선포 노예제 폐지를 지지했던 북부와 노예제 유지를 지지했던 남부사이에 4년간의 전쟁 즉 남북전쟁을 했다

 

  경제와 인구 모두 우세했던 북부군이 미국 역사상 유일했던 국내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남북전쟁은 세계 강국 속으로 성장하려는 미국에 또 다른 의미를 남겼다. 이는 미국이 20세기 세계 최대의 강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기반을 닦아 놓았다.

 

  1862년 남부 전쟁 중 홈스테드법(미국 자연농지법) 이 법은 미래를 창조하려는 미국인들의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이민자들이 모여들어서 서부의 황무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 세기 동안의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이 당시 서부에 도착한 사람들을 맞이한 것은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벌판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생존을 배워야만 했고 후손들을 위해 경쟁해야만 했다.

 

  서부 개척운동은 미국 역사에 있어서 개척과 용기 모험정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역사학자들은 이 운동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미국만의 정신을 창조했다고 강조한다.

 

  19세기말 개간과 경작을 거친 땅을 비옥땅으로 변했다. 인적조차도 드물었던 서부 지역이 곡물창고로 바꾼 것이다. 같은 시기 미국의 산업도 비약적인 발전을 시작한다.

 

  에디슨의 등장 그가 발명한 전력은 그동안의 전기 동력을 대체, 경제 발전의 새로운 에너지원이 탄생, 이는 제2차 산업혁명으로 발전 즉 인류의 생활을 바꿔 놓았고 부를 창조하는 원천이 됐다. 그러나 에디슨은 수많은 발명가 중 한 사람이었다.

 

  유럽기술을 도입한 나라가 어떻게 스스로 창조하는 나라로 발전한 것일까? 창의적인 문화와 제도가 성장의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1787년 제헌회의 대표들은 과학과 실용기술의 보급을 촉진하고 작가와 발명가의 지적 재산 및 발명품에 대해서 특허권을 보장한 것이다. 

 

  19세기말 미국은 유럽을 추월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당시 강대국의 세계패권구도는 변하고 있었고 유럽에서는 통일된 독일 이 최대 강국으로 부상, 아시아에서는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룬 일본이 새롭게 떠 오르고 있었다.

 

  1894년 미국의 총생산량은 최대 경제 강국으로 발전, 미지의 대륙발견 400년 되는 해 그들은 유럽으로부터 영향을 서서히 흡수해서 성장해 왔으며 숨 고르기를 통해 자신들만의 발전방향을 창조해 왔다.

 

   드디어 20세기 이 젊은 국가는 발전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또 세계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