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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人文學) 도전/인문학을 읽어감

인생행로

by 2conomist_ 2025.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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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생인 쉬히는 특히 날카로운 인물 비평으로 유명하다 인생행로는 3년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28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미 국회도서관이 선정항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10권의 책'에 뽑히기도 했다

 

  1972년 기자 신분으로 북아일랜드 분쟁을 취재하러 갔던 게일 쉬히는 공교롭게도 '피의 일요일' 현장을 목격하였다 

 미국으로 돌아온 쉬히는 자산의 인생을 차분히 돌아보았다 서른다섯 살의 그녀는 이곳저곳 취재 여행을 다니면서 사는 인생이 갑자기 불만스러워졌다 지금껏 인생의 연기자였을 뿐 진정한 연출가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을 한 모든 일이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느껴졌다 그녀의 묘사대로" 총체적인 날림공사로 지어진 자신의 세상"이 한순간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여러 부류가 있을 것이다 더욱 열심히 일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고 스릴 있는 운동을 시작하거나 파티를 열어 흥청만청 놀거나....... 하지만 쉬히는 그 무엇으로도 자신의 정신에 난 커다란 구멍을 매울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인생행로는 1970년대 화제작이다 이 책은 인생의 급류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인생의 전환기 

 

  쉬히는 자신이 목격한 끔찍한 사건이 그녀에게 일어날 중대한 변화를 촉발시킨 방아쇠였음 깨달았다 그 변화란 바로 중년의 위기였다 대략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한테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규칙성 있는 인생행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졸업 결혼 출생 취업처럼 인생에 확실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건과 자신을 변화시키는 내면의 발전 단계는 서로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외부의 중대 사건과 연결지으려 하지만 사실 그 사건들은 우리를 다른 단계로 향하게 만드는 촉매제일 뿐이다 이러한 인생의 전환기 궁극적으로 성장을 가져다주는 이 시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때의 변화를 수용하는 순간 우리는 성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쉬히는 이 지점에서'정체성 위기'를 논한 에릭 에릭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어느 곳으로 향하든 변화는 필수적이다 중용한 것은 변화 과정을 인식하고 조정하느냐 아니면 그냥 알아서 진행되도록 내버려 두느냐 하는 것이다.

 

 인생의 단계

 

  쉬히는 10년 단위로 우리의 인생을 나누었다.

20대의 삶

 20대는 살아있는 느낌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일 또는 존재방식을 찾으며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 20대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해야 하는 일'을 하거나 모험을 추구하며'나 자신의 길을 찾는'두 가지 질 중 어느 한쪽을 택한다 이른바 안정과 의무를 택하거나 모든 의무를 벗어던지거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부의 경우는 어떨까? 20대 부부는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자신감 뒤에는 일말의 의심과 불안이 감춰져 있다 특히 결혼을 위해 자기 계발을 미루었던 여성들은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고 30대에 이르러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중대한 변화를 겪는다 

  쉬히는 20대 때 '뿌리는 뒤흔드는'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더 나이 들어서 그 경험을 하게 되므로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지적한다.

 

 30대의 삶

  30대는 이른바'데드라인'의 시기다 느닷없이 시간이 목을 조르기 시작하면 인생의 우선순위를 생각하게 된다 20대에 모든 일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면 30대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음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대체로 20대에 비해 30대의 삶은 안정된 편이다 확실한 직업과 집이 있기 때문이다 30대를 마지막 기회로 여기는 남성들은 이제는 젊고 유망한 신진이 아닌 안정된 중견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대개 37~42세 사이의 불안감이 가장 크다

 

 40대의 삶

 완연한 중년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침체나 불균형을 경험한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들의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과연 이 일이 가치가 있을까?" " 고작 이게 다란 말인가?"  여성들은 자기주장이 더욱 강해지고 남성들은 감정적인 반응 욕구를 잠시 미루면서 자신의 일에 더욱 치열하게 매달린다 이 시기에는 이성에 대한 신비로운 힘을 잃기도 한다

 

나 자신이 되려는 노력

  자아의 정체성 추구를 융은 '개성화'라고 했고 메슬로는'자아실현'이라고 했다면 쉬히는'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각 단계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더욱 명확히 나타낼 것인지 다른 사람의 기대와 사상에 맞춰 굴복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인간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그 사상에 녹아들고자 하는 의존적 자아와 창의적인 독자성과 자유를 추구하려는 독립적 자아를 둘 다 갖고 있다 이 두 자아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경쟁을 벌인다.

 우리는 단순히 부모에게서 도망치거나 부모와 다른 삶을 살겠다는 욕구로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실제로 만난 부부 중에 오로지 사랑만으로 결혼했다는 사람은 없으며 늘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그래서 불행한 느낌이 들면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저 사람이 잘못해서"라고 배우자를 탓한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부부의 발전적 성장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쪽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동안 다른 쪽은 의심과 불안의 시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변화는 내면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늘 상대를 탓하게 되는 것이다.

 

  쉬히는 소설가 월라 캐더의 말을 인용하여 말한다"사람들의 이야기는 두세 종류밖에 없다 그러면서 마치 그것이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끈질기게 반복되는 것뿐이다"

   100세가 넘어도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오면 삶의 위기나 전환기도 다시 달라지게 될까? 어쩌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인생 주기를 내던지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런 때가 오면 '젊음과 원숙'의 구분이 없어지고 인간을 고정된 정체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동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껍질이 단단한 갑각류와는 전혀 다르다  새 껍질은 옛 것을 대신할 만큼 딱딱하게 자랄 동안 겉으로 노출되어 상처받기 쉬운 채 남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