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운하가 뉴욕의 운명을 바꾸고 국가의 역사를 창조했다. 미국의 초기 역사가 버펄로시에 보관되어 있다. 이곳은 최초의 인공운하의 출발점이다. 200년 전 미국 동북단 주민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연안에 마을과 도시를 가로질러 열흘 후에야 미국 최대 도시 뉴욕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의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도시 중에 하나이며 8500만 명의 인구 중 1/3이 외국에서 온 이주민들이다 170종의 언어가 통용되는 이곳에서 다른 언어 다른 피부 다른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뉴욕에 역사는 불과 300년이지만 이 300년이라는 사간은 뉴욕을 눈부신 후광이 가득한 도시로 만들었다.
세계최대 증권거래소 보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 40%에 달하는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300년의 시간에 뉴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어떤 중요한 순간이 뉴욕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을까?
19세기 미국에 국토면적은 지금에 1/2 면적이었다. 당시 미국의 경제를 동서로 양분하는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동부는 미국의 대표 상업지였으며 서부는 미국의 전통 농업지역이었다. 서부는 비옥한 토지와 일조량으로 곡창지대와 동부지역에 물자 생산지였다. 그러나 19세기 미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해마다 풍년이 계속되어도 서부 농장주들은 부요하지 못했으며 동부상인들 역시 부러움에 탄식만 쏟아낼 뿐이었다.
서부 물품들은 동부로 운송하는 것이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부 밀가루 1통은 동부로 운송하려면 20일 정도의 시간이 소유됐다. 밀가루 원가가 톤당 40달러였다면 운송비용 120달러나 들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위싱턴도 심지어 서부지역의 사람들의 충성도가 위태롭다고 말할 정도였다.
경제적 이익에 있어 동부가 아닌 식민지가 있는 서부에 더 많이 의존해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 개인의 이익측면에서 동서부 간 운송문제는 언제나 난제이었으나 1817년에 이르러 이 문제를 해결할 계기가 마련되었다.
1817년 뉴욕주 새로운 주지사 트윗 클린턴을 맞이한다 미국 동서를 관통하는 운송로 건설이라는 이상을 품고 있었다
뉴욕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풍부한 수자원이 5 대호가 있다 인공호를 연결해 5 대호를 연결할 수 있다면 천연항구인 뉴욕을 이용해 동서를 관통하고 전 세계를 연결하는 수상 터널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리운하건설 요청을 연방정부해 하였으나 거절을 당하게 된다
다음으로 뉴욕에 월스트리트로 찾아간다 그곳은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월스트리트는 뉴욕주가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우 흥분했다 당시 관례에 따르면 중개수수료로 1% 전후로 7만 달러의 수수료를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개인들은 이 대형 매매를 적극 중재하면서 클린턴 주시사에게 월스트리트가 이리운하 채권을 위탁판매 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장담했다 이는 정부최초의 건설 프로제트이자 월스트리트 최초의 공사대금 채권이었다.
채권은 뉴욕주 정부가 발행했는데 많은 뉴욕 주민들이 이를 구매했고 미국 내 여타지역과 당시 세계의 금융중심 런던에 까지 판매됐다. 1817년 7월 4일 이리 운하가 착공됐다 1/3 이상이 막 이민온 아일랜드들이었다 이곳에 그들은 50센트의 일당을 벌 수 있었다.
2년 후 1단계 운하구간이 완성되고 가 관문은 매표소 역할을 겸했다 당시 투입된 자금이 100만 달러가 채 되지 않았지만 각 관문에 통행세는 25만 달러에 달했다. 이 수익성 좋은 사업은 월스트리트 중개인들에 열정을 자극했다 이리운하 채권은 시장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자금에 충족에 따라 운하건설도 가속화되어 갔다.
완공까지 10년 계획을 잡았으나 2년 단축되어 1825년에 완공됐다. 운하의 개통은 평온했던 이리호를 변화시켰고 운하 주변도시들도 나날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서부에서 동부로 밀가루 1톤을 운송하는데 전보다 시간을 1/3 단축되고 운송비도 3/4 절감됐다. 당시 신문들은 이렇게 묘사했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작은 배들을 볼 수 있다. 밤이 되면 반짝이는 조명등이 마치 무리 지어 날아가는 반딧불처럼 보인다." 이리 운하 번영이 뱃길을 따라 뉴욕항으로 집중되면서 뉴욕을 불야성을 이루시 시작한다.
이리호가 개통된 후 뉴욕에는 블랙홀 회사가 설립됐다 뉴욕에서 영국 리버풀까지 정기 노선을 우편선을 개통하고 이항로를 블랙홀 항로라 불렀다. 이 블랙홀 항로로 인해 자연스럽게 물류의 중심이 되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된다.
이리운하의 성공으로 각 주들은 앞 다투어 채권을 발행하고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월스트리트의 운하개념이 주목을 받자 지도에도 없고 하천도 없는 지역에서도 운하 채권을 발행하면서 점차 거대한 버블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현재 거래장 안에는 3천 명 정도의 트레이더들이 있지만 5년 전에는 5천 명 10년 전에는 만오천 명까지 있었다. 뉴욕 증권거래소 최초의 상승장은 1830년에 나타났다. 일일 거래량은 8천 주에 달해서 7년 사이에 50배나 증가 이 상승장을 이끌 것이 철도의 탄생이었다.
19세기 사람들에 있어서 철도의 출현은 기대감보다 공포감이 더 컸다. 영국에서 철도가 개통한 후 의회의원 한 명이 네일에 갈려 사망 사고로 이 소식은 접한 파리나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철도 부설이 땅의 기운을 파괴한다고 우려를 금치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새로운 이 미국이라는 나라는 새로운 어떤 사물에 대해서도 강렬한 호기심이 있었고 이런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충분한 자금력을 보유해야만 했다.
당시 철도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1.6km당 3만 6천 달러로 천문학적 숫자였다. 1835년 월스트리트에는 3개 철도주가 있었지만 1850년에 이르러 38까지 증가했다. 철도주와 채권이 미국 전역에서 유통되는 증권에 반 이상을 차지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각지의 사람들을 미국으로 유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철도 운송망의 끊임없이 확장에 따라 상품 시장이 미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금융시장이 전미 경제에 미친 영향은 19세기 후반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종횡으로 교차된 철도망은 미국을 진정한 통일 시장으로 만들었으며 상품에 유통은 다시 금융의 번영을 촉진시켰다.
1839년 청년 자신의 일기장에 이런 글을 섰다." 기차의 경적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다. 길고 긴 열차모양이 용 같기도 마귀 같기도 하다." 철도주가 이끄는 상승장 시대는 끝나고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전기 인터넷 바이오 시대를 겪게 된다. 이곳에서는 소재가 고갈되는 일들이 영원히 없을 것만 같다. 이곳에 자금 역시 언제든 전장에 투입되길 기다리는 포탄처럼 새로운 시대에 투입되길 기다리고 있다.
1861년 4월 11일 남북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초기에는 막강한 재력으로 남측이 연이어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은 연방정부를 점차 재정위기로 몰아넣다 초기 채무는 6천만 달러를 넘어섰다. 신문에는 매일 징집 광고가 실렸다. 그러나 정부에 300달러 만 내면 징집을 면제해 주는 법안의 통과되자 국민들은 강제징병에 갈수록 반감을 가진다.
1863년 7월 13일 뉴욕 맨해튼에서 폭동이 일어나 사상자수가 2천 명을 넘는다. 링컨 정부는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 모든 전쟁은 전쟁자금을 적시에 모으는 것이었다 이때 월스트리트에도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었다 제이쿡은 평범한 은행가였다. 어느 날 연방정부가 그를 찾아가 5천만 달러의 연방 정부 채권을 판매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에는 부자들의 금전 클럽은 단 하나뿐이어서 자금 조달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쿡은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야만 했다. 그래서 고액의 국채를 소액으로 바꾼 다음 애국주의를 이용해 호소하는 것이다 부유하지 않은 사람도 애국이라는 이유만으로 국채를 구매했다. 쿡은 민중의 애국열정을 전쟁채권으로 전이시킨 것이다
1860년대 미국에서는 극히 일부에게만 은행잔고가 있었기 때문에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 1%에도 못 미쳤으며 대부분 가정에 남은 현금을 침대 밑에 보관했다. 내전이 끝나갈 무렵 국민의 5%가 채권을 구매했다. 내전이 시작될 때 미국 국채는 5천5백만 달러였지만 4년 후 내전이 종식될 때는 27억 달러에 달했다.
월스트리트는 북부군에 끊임없이 자금을 조달했지만 남측의 대 농장주들 자금이 점차 소진되어 갔다 그들은 전쟁에 대한 자금 조달방법을 적시에 수립하지 못해 전쟁에 의한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남측에 한 장군은 회고록에 이런 말들 남겼다."우리는 북측에 병사들에 의해서 패한 것이 아니라 북측에 금융에 패한 것이다."
월스트리트 금융가는 남북전쟁 중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그중 주목할 만 은행가 J.P모건이다(1837~1913) 모건은 유럽에서 학업을 마친 후 월스트리트의 은행가가 된다 좋은 학교 풍부한 경력 그리고 가문에 은행과 유럽 금융계와 밀접한 관계도 이 모든 것이 모건을 월스트리트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게 만든다.
19세기 중기에 이르러 미국은 경제 발전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가 됐다. 1860년 제조업 분야 전 세계 생산액 중 중국이 32% 점유할 때 미국은 1.8% 불과했지만 1900년대 중국 11% 넘어 미국은 16%를 점유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반세기에 산업의 고속성장을 이룬 후 각 분야에서 시장의 강자들이 출현한다 그들은 수많은 경쟁자들과 가격 경재에 싫증을 느끼며 계속되는 저가 경쟁을 산업발전에 장애물이 됐다. 19세기말부터 미국의 강철 석유 철도 같은 상공업들이 대규모 저자본 고생산성을 추구하게 되자 인수합병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미국 최초의 대규모 합병현상은 1898년부터 1902년 사이 일어났다 이는 19세기말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회사들 간의 경쟁 심화로 이윤을 얻기 힘들었던 것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1882년 록펠러는 세계최초 석유트러스트 스탠더드오일 회사를 창립한다 1890년 스탠더드오일 사는 미국의 정유물량에 95% 송유물량에 90% 원유생산량에 25% 독점한다.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는 데 있어 모건은 적임에 가장 합작 파트너였다 그는 언제나 최단기간 내에 많은 자금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막강한 모건의 능력은 그가 월스트리트에서 조직한 신디케이트에서 온 것이다. 신디케이트에는 미국 은행과 외국 은행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건은 월스트리트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주원인이 질서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모건은 인수 합병 풍조가 월스트리트의 운명을 바뀌어 놓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앤드류카네기(1835~1919)는 4억 8천만 달러에 모건에게 주식을 팔고 돈을 건네며 말한다 "축하합니다. 카네기 씨 당신은 세계최고의 부자가 됐습니다." 그 후 US 스틸사를 창업한다.
20세기초 월스트리트는 미국에 인수 합병이라는 광풍을 몰고 왔다 매년 3천여 명의 중소기업이 없어지고 대기업이 미국시장을 점령했다. 1910년 미국에 크러스트 조직은 800개에 달했으며 72개의 대기업의 시장점유율 40%에 이르렀고 심지어 대기업의 시장의 70%를 점유하기도 했다
트러스트가 미국경제를 주도적으로 통치하는 세력으로 자리 잡았지만 배후에는 월스트리트가 있었다. 1914년 모건은 이탈리아에서 객사했다. 그날 뉴욕증권거래소는 반나절동안 폐장했고 유산은 6천만 달러였다 록펠러는 이 보도를 보고 모건이 부자라고 말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그 시대의 록펠러의 자산은 10억 달러 넘었고 카네기의 자산은 4억 달러 랜드비치의 자산은 5억 달러를 넘었다 모건은 에디슨에게 투자라고 GE를 창립하여 미국에 전기시대를 열었다. 1920년 모건 빌딩에 폭파사건, 1933년 모건 재단이 강제분리 되면서 금융제국시대는 끝이 난다.
19세기 월스트리트는 미국 사회의 축소판으로 사치와 불안 그리고 초조가 내재되어 있었다. 1874년 미국의 대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 시대를 이렇게 묘사했다" 표면적으로는 번화하지만 부패와 상실 그밖에 잠재된 위기가 숨겨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황금시대라 부르지만 실은 내적인 허무와 모순으로 가득한 도금시대에 불과하다"
19세기부터 유럽에 귀족들은 미국에 별장을 짓고 유럽에 귀족생활을 모방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 시기부터 갑부들은 자신의 자산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학교, 박물관, 극장, 공공도서관을 짓거나 자선기금에 쓰도록 해서 자신에 자산을 사회에 남기는 것을 전통으로 삼기로 했다.
당신이 뉴욕을 사랑하던 사랑하지 않던 뉴욕은 미국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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