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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타리/경제의 다양한 이야기

5. 실리콘 밸리의 방정식

by thanks tree 2024.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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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과학기술 혁명에 있어서 월스트리트 힘은 동반자적 위치에 있다 바로 이런 힘이 부를 창출해 강대한 미국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전통적 의미의 거래 장소는 없지만 기업의 상장식과 기념식을 모두 나스닥 전관판 앞에서 거행된다. 이곳은 수많은 기업가들의 꿈의 장소이다.

 

나스닥은 3000천 개 이상의 기업이 상장되어 있는 세계최대의 거대 기업이며 일일 거래량이 25~45억 달러에 이른다 이처럼 방대한 거래 시스템을 보유한 나스닥은 사실 시장의 투명성을 위해서 탄생됐다. 1971년 2월 8일 한 노천 공터에 나스닥 거래소가 세워지면서  거래가 시작되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술을 사용했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의 뉴욕 증권거래소는 설립된 지 180년이 됐고 까다로운 상장조건에 중소기업들이 진입할 수 있는 조건이 매우 높았다 이런 기업들을 흡수하고자 나스닥은 내건 광고는 그 어떤 기업도 상장할 수 있으며 존립기간이 12개월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장 문턱이 낮아진다는 것은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이는 중소기업들에게는 월스트리트로 진입 기회를 마련해 주는 기회를 가져왔다. 설립된 지 15년 후 처음으로 월스트리트에서 관심에 대상이 된다.

 

빌게이츠를 기업의 창립자로 그는 수학 컴퓨터 언어분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유 15살에 자동화기기를 대체하는 마이크로 칩을 개발했다. 1986년 3월 13일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나스닥에 상장된다 빌게이츠는 45%의 지분보유 이처럼 미국의 장외거래 시장은 젊은이들과 중년들에게 개인창업과 성공스토리의 수단이 됐고 이로 인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게 된다.

 

 자본의 지원아래 일개 대학중퇴생이 창업한 이 기업은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이끌었고 이때부터 나스닥에도 첨단 벤처기업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창업은 이곳에 오는 모든 목적이자 이유가 된다. 어디서 왔는지 과거에 성공했는지 관심이 없는 이곳이 바로 실리콘 밸리이다.

 

 샐리콘 밸리는 도시가 아니라 캘리포니아 북부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시와 산호세시에 있는 계곡지역으로 수많은 도시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일찍이 반도체 트랜지스터의 생산지였다.

 

 1971년 한 기자가 이 지역의 반도체 주요 성분인 실리콘을 이 지방이름에 사용하면서 실리콘 밸리라는 이름이 부쳐졌다. 수많은 기업들이 실리콘 밸리의 알려지지 않은 거리에 숨어있다. 이곳은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으며 오랫동안 미국 첨단기술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바로 이곳 때문이다 초라한 차고안에서 실리콘 밸리의 최초의 기업이 설립된다. 1938년 스탠퍼드 대학 출신의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패키드 두 사람은 휴렛패키드사를 창립한다 이 낡은 창고는 창업인들의 꿈을 지탱해 주는 곳으로 남아있다.

 

 오늘날의 실리콘 밸리는 하나의 차고 회사에서 수 천 개의 첨단기술 집산지로 발전해서 세계미래 과학 기술의 최전방기지로 성장했다. 또한 이곳은 미래 인공지능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막 창업한 중소기업들이 훨씬 많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동업자 한 두 명 사무실 한 칸이 이 기업들이 전부다.

 

이 빌딩에서는 실패한 기업들이 떠나가곤 하지만 새로운 기업들이 새로 입주하기도 한다 신설기업들은 어느 날 하늘에 우뚝 솟은 거목처럼 성장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고통과 시련을 견디지 못하는 기업들은 중도에서 쓰러지는 잔혹한 현실에 처한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창업 실패율이 30~40% 10년 넘게 생존하는 경우는 10% 정도이다 이런 첨단기술의 발전이 대중들에게는 생활방식이 바뀌는 신비로운 힘이지만 월스트리트의 입장에서는 이곳이 리스크의 근원지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려면 비싼 시간과 막대한 원가를 지불해야 하며 동시에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담력과 힘이 있어야만 한다.

 

 혁신과정에서 리스크는  어디까지 전파될 수 있을까?  기업가와 면담하기 전에  항상 사업계획서부터 검토한다. 먼저 계획서 내에 있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조사하면 그다음 시장규모에 대해 시장조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시장규모가 충분하고 장기적인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고 예상되면 전망이 밝은 사업으로 인정된다.

 

이렇듯 그들의 가진 창업의 꿈은 이곳에서 또 다른 평가시스템에 의해서 평가된다. 그것은 투입되는 자본금과 투자회수기간 그리고 투자위험등을 말한다. 한마디로 돌더미 속에서 옥석을 가리기 것을 말한다.

 

 500년 전 이 대륙에서 최초 벤처투자 일화가 있다 15세기말 한 젊은이가 스페인 여왕을 찾아가 대규모자금을 요청한다 목적지는 황금과 향료가 생산되는 동방지역이었으며 이전까지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노선이었다. 여왕의 승낙은 젊은이에 대한 성공과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경력이 그의 전기로 널리 알려지면서 그를 영웅으로 받들지만 사실 서구지리학의 가장 빛나는 성과는 여왕의 벤처투자와 콜럼버스의 향해기술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월스트리트의 힘을 기반으로 미국은 5 개도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고 남북을 횡단하는 철도를 개통하면서 전통적인 농업국에서 산업화로 행하는 강국으로 변모하게 돈다. 500년 전 탐험계획은 오늘날에 비즈니스 계획서로 변천했다. 오늘날의 벤처투자자들은 자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영관리에 참여로 적절한 제안과 최선의 리스크 조절로 창업자와 이익공동체 구축해야만 한다.

 

 우리와 창업자 사이에는 항상 의견차이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대세에서 출발하고 양측의 공동목표도 만들고 적어도 자금운용에 있어서만은 투자자와 창업자가 공동전선 위에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다. 벤처 투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창조하는 과학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열정을 쏟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의 감각은 100년 동안 모색해 온 월스트리트나 시장에 자유로운 발전에서 온 것이다 벤처투자 개념이 없던 초기 월스트리트는 어떻게 과학기술과 만나게 되었을까? 1882년 어느 여름 한 저택이 시민들에게 둘러 쌓여있다  이 집의 주인은 JP모건이다 이날 새로운 발명품은 백열등 전시회를 열었다.

 

 이 조명 시스템을 설치 책임자는 토머스 애디슨이었다. 1840년대부터 중대형 거주시설은 모두 가스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가스등은 불빛이 불안정하고 연소과정에서 유독가스가 배출되는 단점이 있었다. 그는 발명으로 축적한 자본으로 뉴저지주에 실험실을 열고 100여 명의 기술자들은 모집했다. 그는 전등발명을 위해서 주당 800달러를 지불했다. 이는 당시 중산층 가정에 1년 소득이 넘는 금액이다 에디슨은 이 막대한 자금이 소비되는 프로젝트를 완성하지 못해 모건에게 넘기고자 했다.

 

모건은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음을 직감하고 2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에디슨과 합작해서 전등회사를 설립한다 은행가와 발명가의 합작은 이 프로젝트를  더 위대하게 발전시켜 전구의 발명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전력망까지 구축하기 이르렀다. 공동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 중 이 투자가와 발명가는 기업 경영에 견해차이로 인해서 상대진영에 서게 되는데 뜻밖에 사태가 발생한다.

 

이때 자본의 힘을 가진 모건은 에디슨을 전력회사와 경쟁업체를 합병하고 신설회사 이름에 에디슨 이름을 삭제했다 이 회사가 GE이다. 전등이 세계각지로 유행처럼 퍼져나가면서 19세기말 청나라에도 전등이 설치된다 전기가 광범위한 운용으로 세계는 전혀 새로운 전기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전기시대는 미국이 크나큰 도약을 이루는 밑거름이 됐고 세계과학기술을 중심을 유럽에서 북미로 이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모건의 자본과 에디슨의 기술이 성공적인 합작을 이루어 냈지만 이는 전통적인 합작방식이었다.  60년 후 자본과 기술은 미국에서 참신한 방법으로 다시 나타나는데 바로 벤처캐피털이다.

 

 과거에는 벤처캐피털 개념이 없었고 가계자금뿐이었다 때문에 은행투자를 받기 어려워서 창업성공률이 극히 낮았다. 1946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원장 조지도리오는 미국 최초의 벤처캐피털 기업인 아메리카 리서치사를 창립하고 청단과학기술에 집중투자한다.

 

 1957년 7만 달러의 자금으로 컴퓨터 개발업체 이퀴먼트사에 투자해 지분 70%를 소유한다. 1968년 디지털 이퀴먼트사의 성장으로 7만 달러의 투자금이 3억 5천만 달러가 된다 이는 현재 벤처투자 성공의 첫 사례이기도 하다.

 

 오늘날 벤처캐피털은 미국의 주요 산업이 됐다. 벤처 투자가들은 이 거대한 자금을 어디서 모으는 것인가? 첨단과학기술의 배후에 있는 출자자는 누구인가? 연기금은 미국인들의 생활보장중에 하나이다 이 기금을 어떻게 관리하고 늘릴 것인지가 이 조직의  주요 책임일 것이다.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일부는 경험이 많은 벤처 투자자들에게 맡긴다 미국 산업발전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은 대부분 연기금, 기부금, 보험회사, 투자은행들 금융기관을 포함한 자본시장에서 유입된다. 이는 첨단 과학 기술이 성장하는 과정 속에 모든 리스크들이 전체시장에 의해 부담되는 것이지 어떤 개인이나 정부에 의해 단독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렇게 벤처시스템은 창업자 벤처투자가 투자은행 증권거래소의 포장을 통해서 상장이 되고 투자가들에게 주식을 구매하도록 하는 형태이다. 서로 얽혀있는 이익집단은 각자의 이익이 최대화되기를 추구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첨단 과학기술에서 수반되는 리스크까지 수반한다.

 

 사람들은 기술의 개발자가 누구이며 성과가 어떤지는 알 수 있지만 누가 그 주식을 구매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주도하는 제3차 산업혁명은 앞서 두 차례의 기술혁명에 비해서 더 빠른 속도로 진전했다. 실리콘 밸리는 이 혁명에 발원지였으며 월스트리트는 이를 가속화시키는 원동력이었다.

 

 1999년 한 젊은이가 실리콘 밸리일을 포기하고 중국에서 창업을 하겠다고 나선다 그는 실리콘밸리 경험을 통해 기술과 자본 간의 운영패턴을 알게 됐고 중국에서도 이런 패턴을 복제하는 길을 찾고자 했다 그가 바로 바이두의 창립자 리옌홍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벤처 투자가 걸음마 단계였다. 바이두가 본토 중국에서 설립됐지만 본토 투자기업들을 흡수하지 못하고 오히려 미국에 팀을 끌어들인다

 그 당시 인터넷버블로 수많은 기업들이 연이어 도산을 하는 상황이었다. 팀(벤터캐피털 대표)은 그들의 넘치는 창의력과 활력에 세상을 변화시킬 실력까지 갖추고 시대의 조류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이두는 세계 유수의 벤처투자 기업들로부터 3차례 융자를 통해 3천만 달러를 받고 바이두 실적이 안정적인 상승세를 타자 2005년 나스닥에 상장한다 바이두 주식은 상장 첫날 365%를 기록한다 뉴스에는 바이두사가 중국의 구글이라는 영예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기업이 상장된다는 것은 노력 끝에 빚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스닥이 출현한 1971년부터 현재까지 40여 동안 나스닥이 키운 수많은 기업들이 세계 500대 기업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1971년 인텔 상장, 1986년 마이크로소프트사 상장, 2004년 구글 상장 나스닥은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주식시장이 됐으며 오늘날 10대 대중매체들은 이곳에 라이브 무대를 만들어서 전 세계에 투자자들에게 주식 정보를 보도하고 있다.

 

 생생한 정보는 나스닥의 성공사례도 볼 수 있지만 참혹한 사례도 목격하게도 된다 시장에서 8% 정도가 상장폐지 자격을 박탈당하곤 한다. 인터넷 버블 전 나스닥에는 500개의 상장기업이 있었지만 버블이 붕괴되면서 반이 조용히 장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 버블이 없었다면 그 후 인터넷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2010년 미국의 부호 명단은 다시 한번 뒤집혀서 마크주커버그가 40억 달러로 가장 젊은 억만장자로 이름을 올린다

실리콘밸리 스탠퍼드 대학에서는 창업 관련 강의가 매일 개설되는데  과거 50년간 교수와 학생들이 창업한 기업은 1200개가 되며 실리콘밸리의 절반이 넘는 상품들이 그들 손을 거쳐 나오게 된다.

 

 미국의 저명한 투자가 존 템플턴은 " 국가의 부는 자연 자원에 의존할 수 없으며 반드시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관념에 의존해야 한다." 말한다